2026-02-17
침대 맡에 둔 스마트폰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습관처럼 밤새 쌓인 알림들을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출근길 지하철, 제 시선은 물론 주변 모든 이들의 고개가 작은 직사각형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숙여져 있습니다. 엄지손가락 한 번의 움직임으로 세상의 모든 소식을 접하고, 지구 반대편의 친구와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누는 초연결의 시대. 분명 편리하고 효율적인 세상이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내 하루가 너무 매끄럽기만 한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죠.
거칠 것 없이 미끄러지는 액정 화면의 감촉이 가끔은 너무 차갑게 느껴질 때, 저는 도망치듯 ‘아날로그’의 품으로 숨어들곤 합니다. 최근 사회적 트렌드로 자리 잡은 ‘아날로그 회귀(Analog Return)’는 비단 저만의 유별난 취향은 아닌 듯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와 함께 자란 Z세대들이 이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필름 카메라의 불편한 조작법을 배우고, 잡음이 섞인 LP 음반을 굳이 찾아 듣는 이 현상. 이것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우리가 잃어버린 ‘감각의 복원’을 원하고 있다는 신호가 아닐까요?
지난 주말, 저는 오랜만에 휴대폰을 가방 깊숙이 넣어두고 작은 문구점에 들렀습니다. 화려한 기능도, 백스페이스 키도 없는 투박한 만년필 한 자루와 종이 질감이 거친 노트 한 권을 샀습니다. 카페 구석 자리에 앉아 잉크를 채우고 첫 문장을 적어 내려가던 그 순간의 전율을 잊을 수 없습니다. ‘사각, 사각.’ 종이와 펜촉이 마찰하며 내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손끝에는 미세한 진동이 전해졌습니다. 디지털 메모장에 적었다면 마음에 들지 않아 수십 번은 지웠다 썼다를 반복했을 문장들이지만, 잉크로 적힌 글씨는 지울 수가 없기에 오히려 더 신중하고 진솔하게 저의 마음을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최근 경제 트렌드인 ‘필코노미(Feelconomy)’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가격 대비 성능을 따지는 ‘가성비’의 시대를 지나, 이제 우리는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감을 따지는 ‘가심비’, 즉 나의 감각과 기분을 충족시키는 소비에 지갑을 엽니다. 조금 불편하고, 시간이 더 걸리고, 때로는 비용이 더 들더라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경험. 고화질의 디지털 음원 대신 굳이 턴테이블 바늘을 올려놓는 수고러움을 택하는 이유는, 그 불편함 속에 숨어 있는 따뜻한 온기 때문일 것입니다. 빠르고 완벽한 결과물보다는, 조금 서툴더라도 과정 그 자체를 온전히 느끼고 싶은 마음이 우리를 다시 아날로그로 이끄는 것이겠죠.
사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효율’이라는 단어에 쫓겨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1분 1초를 아껴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정작 내 마음을 들여다볼 시간은 ‘비효율’로 치부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필름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사진이 인화되기를 기다리는 며칠의 시간, 엽서를 쓰고 우체통에 넣은 뒤 답장을 기다리는 설렘, 그 ‘기다림의 미학’이야말로 팍팍한 현대인의 삶을 숨 쉬게 하는 산소 같은 존재가 아닐까요.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세상에서, 즉각적이지 않은 것들이 주는 위로와 평안은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어제 쓴 일기장에는 잉크가 번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스마트폰이었다면 깔끔하게 수정되었을 그 얼룩조차, ‘그때 내 손이 조금 떨렸구나’ 혹은 ‘이 단어를 쓸 때 망설였구나’ 하는 기록이 되어 저에게 말을 건 넵니다. 완벽하지 않아서 더 사랑스러운 것들, 빠르지 않아서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들. 아날로그로의 회귀는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속도에 떠밀려 놓치고 있던 ‘지금 이 순간’을 되찾는 여정입니다.
오늘 밤, 여러분의 손에는 무엇이 들려 있나요? 매끈한 스마트폰 대신, 투박하지만 온기가 느껴지는 물건 하나쯤 곁에 두어보는 건 어떨까요. 잠시 디지털 세상의 소음을 끄고,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나 타닥타닥 타오르는 캔들의 심지 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그 작은 틈새로 비로소 나만의 시간이 조용히, 그리고 충만하게 차오르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의 일상 속, 마음을 다독여주는 당신만의 ‘아날로그’는 무엇인가요?